방송 프리랜서 노동자 10명 중 8명 성폭력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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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할 수 있냐.' 예쁘장한 여성 배우들은 다 들어봤다는 말입니다. 사적인 관계 요구, 성형 종용, 부적절한 신체 접촉 등……. 심지어 존경하던 감독님이 제 친구에게 스킨십을 요구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에서 깊은 배신감과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일을 쉬고 있습니다. 그 충격이 제 꿈을 접게 만든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방송·미디어 산업 내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 단체 '엔딩크레딧'이 진행한 '방송·미디어 노동 현장 내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한 응답자가 남긴 말이다. 지난 2009년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후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많은 방송·미디어 산업 종사자가 현장의 폭력을 묵묵히 감내하거나 끝내 꿈을 포기하고 있다.
엔딩크레딧이 지난 2월 11일부터 3월 31일까지 약 2개월에 걸쳐 방송·미디어 노동자 106명을 대상으로 성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8%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성폭력 피해 유형(중복 응답 가능)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와 평가'가 44명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전화·문자·SNS 포함)'이 33명, '기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가 27명, '포옹·손잡기·신체 밀착·안마·입맞춤 등 신체 접촉 및 접촉 강요 행위'가 26명,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자리에 앉도록 강요하는 행위'가 20명 등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사적 만남을 강요하는 행위', '성적 관계를 요구하는 행위',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거나 노출하는 행위' 등 직접적인 성폭력 역시 각각 10명이 넘는 응답자가 피해 사실을 알렸다. '미행·불법촬영·스토킹' 등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을 경험한 응답자는 5명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한 응답자는 "상급자의 성관계 요구 거절 후 불평등한 인사를 당했다"고 털어놨고, 다른 응답자는 "촬영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키스 장면이나 노출, 신체 접촉 장면이 추가되는 경우가 있었다. 거절하자 역할을 맡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방송·미디어 산업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여전히 신고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가장 큰 이유는 고용형태 등 신분상의 열악한 위치(응답자 중 90.0%가 답변) 때문이다. 평판이 중요한 비정규직·프리랜서 계약 관계에서 섣불리 신고를 할 수 없는 것. 실제 성폭력 사건을 신고한 응답자 중에서도 '사후조치는 없었다', '적절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응답이 각각 절반을 넘겼다. 방송·미디어 노동 환경 상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권력관계 역시 문제가 크다. 응답자 47명은 성폭력 문제 발생 원인 자체가 '성폭력 행위자가 지닌 권력 관계'에 있다고 봤다.
성폭력 사건 해결에 대한 기대치도 낮았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시 해당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방송사나 제작사 또는 플랫폼에서 적절하게 성폭력 사건을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에 대한 항목에 전체 응답자 70명 중 54명(77.1%)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대다수의 방송 현장에서는 성폭력 예방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성상민 작가노조 사무국장은 "방송사, 제작사, 플랫폼 등 참여 자본 차원의 문제 해결 시스템도 미비하며, 문화체육관광부나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 유관기관에서의 처리 제도도 노동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큰 신뢰감을 주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방송·미디어 산업에 성폭력 문제 사례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명확한 처리 절차나 굳건한 예방 교육 및 제도, 성차별 문제에 대한 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라며 "이는 방송·미디어 산업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방치돼 왔던노동 구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움직임과 성인지감수성의 향상, 성폭력 문제의 적극적인 예방 노력과 제도 구축 그리고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와 기관 등의 구축에 나서야만 한다"며 "이는 결코 정부와 회사만의 힘으로 풀 수 없으며, 현장 노동자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정부와 회사는 더 이상 당면한 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며 문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해결을 위한 움직임에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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